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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 ‘방첩사’ 49년 만의 종말… 이름만 바꾸던 관행 끊고 ‘기능 분산’으로 완전 해체
[방첩사 해체 결정 요약]
보안사, 기무사, 안보사로 이름을 바꾸며 군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온 국군방첩사령부가 2024년 12·3 비상계엄 연루 책임을 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정부는 기존의 '명칭 변경' 중심 개편에서 벗어나, 안보수사와 방첩, 보안 기능을 각기 다른 조직으로 완전 분산하는 ‘해체 후 기능 이관’ 방식을 확정했습니다. 이는 단일 기관에 집중된 권한이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로 이어지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됩니다.
군 정보기관의 역사는 곧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국가 안보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조직된 이들은 때로는 정권 창출의 막후 실력자로, 때로는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간판 교체가 있었으나 핵심 기능은 온존해 왔던 방첩사가 마침내 기능적 해체라는 근본적인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 보안사에서 방첩사까지: 49년간 이어진 ‘간판 바꿔달기’
방첩사의 뿌리는 1977년 통합된 국군보안사령부에 닿아 있습니다. 신군부의 집권을 뒷받침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보안사는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로 '기무사'가 되었고, 세월호 사찰과 계엄 문건 논란으로 '안보사'를 거쳐 현 정부에서 '방첩사'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조직의 보존을 위한 외형적 변화였을 뿐, 정보 수집과 수사권이라는 강력한 칼날은 여전히 한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2. 12·3 비상계엄의 주역: 다시 드러난 정치 개입의 독니
방첩사가 해체라는 극단적 처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입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이 정치인 체포를 지시하고 중앙선관위에 무장 병력을 투입하는 등 국헌문란 행위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민주적 통제가 없는 군 정보기관이 언제든 정치적 병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더 이상의 인적 쇄신만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3. ‘해체 후 분산’: 권력 집중을 막는 근본적 해법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개편의 핵심은 기능의 분산입니다. 단일 기관이 수행하던 안보수사는 국방부조사본부로, 방첩정보는 국방안보정보원으로, 보안감사는 중앙보안감사단으로 각각 쪼개어 이관됩니다. 특히 과거 사찰의 수단이 되었던 '동향조사' 기능은 전면 폐지됩니다. 이는 권력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상호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사유화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전략입니다.
4. 민주적 통제 강화: 군 정보기관의 본연으로
이번 자문위의 안은 단순히 조직을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주적 통제 체계를 확립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통령 독대 보고와 폐쇄적인 운영으로 성역화되었던 군 정보 업무를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보안과 방첩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유지하되, 군인과 민간인을 감시하던 과거의 구태 의연한 관행과는 절연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이번 개편의 지상 과제입니다.
5. 국방 혁신의 이정표: 연내 해체 완료를 향하여
국방부는 자문위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연내 방첩사 해체와 신규 조직 신설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이는 단순한 군 조직 개편을 넘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군사주의의 잔재를 청산하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방첩사가 사라진 자리에 세워질 새로운 시스템이 국가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면서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선진국형 안보 모델로 정착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