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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확인한 '지워지지 않은 이름': 스위스 입양인 차일숙 씨의 간절한 부름
1968년 스위스로 입양된 이로나 사비나 비르슈(한국명 차일숙·62) 씨가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가족을 찾기 위한 간절한 사연을 전했습니다. 1964년 진해시청에서 발견되어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던 아픈 아이였으나, 50여 년이 흐른 지금 자신의 한국 호적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잃어버린 뿌리를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1967년 보육원으로 배달된 정체불명의 드레스 소포는 그녀의 과거를 풀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로운 단서로 남아 있습니다.
1. 1964년 진해의 가을: 시청 화장실에서 시작된 운명
시간은 60여 년 전인 1964년 11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남 진해시청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태어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여자 아기가 공무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기록상 생일인 1964년 10월 25일로부터 약 한 달 뒤의 일이었습니다. 연고를 알 수 없던 아기는 곧바로 경남 진해 보육원으로 인계되었고, 그곳에서 이름 대신 47번이라는 숫자로 등록되었습니다. 훗날 스위스로 건너가 사비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그녀의 시작은 진해의 낯선 관공서 복도였습니다.
2. 수수께끼의 드레스: 보육원으로 날아온 익명의 선물
비르슈 씨의 유년 시절 기록 중 가장 기묘하고도 가슴 아픈 대목은 1967년에 발생했습니다. 입양을 앞둔 그녀가 보육원에 머물던 당시, 누군가 보낸 소포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그 안에는 '차일숙'이라는 한국 이름이 선명하게 적힌 예쁜 드레스가 들어있었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드레스는 그녀가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은 존재였음을 암시하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친부모가 보낸 마지막 작별 인사였을지도 모를 그 드레스는 지금도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3. 심장병을 앓던 소녀: 국경을 넘어 찾아온 생존의 기회
발견 당시 비르슈 씨는 매우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선천성 심장 중격 결손증인 VSD(심실중격결손)를 앓고 있었으며, 영양 부족으로 인해 또래보다 작고 왜소했습니다. 보육원 생활을 견뎌내기엔 너무나 가냘픈 생명이었던 그녀는 1968년 5월 홀트아동복지회 일산 지부로 옮겨졌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위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아픈 소녀를 품어준 먼 이국땅의 부모 덕분에 그녀는 건강을 회복하고 예순을 넘긴 성인이 될 수 있었으나, 가슴 한구석의 구멍은 수술로도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4. "나는 지워지지 않았다": 50년 만에 마주한 한국 시민권
해외 입양인으로 살아온 50여 년의 세월 동안 비르슈 씨는 당연히 자신의 한국 시민권이 소멸되었을 것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기억 너머의 공간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녀의 호적은 취소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법적으로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시민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라고 강조하는 그녀의 말에는 존재의 근원을 확인받은 이의 벅찬 감동과 슬픔이 교차합니다.
5. 기다림의 메시지: 진해의 기억을 가진 분을 찾습니다
이제 환갑을 넘긴 차일숙 씨는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 합니다. 1964년 진해시청에서 발견된 아이, 심장이 아팠던 소녀, 그리고 1967년 '차일숙'이라는 이름을 적어 드레스를 보내주었던 소중한 인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긴 시간이 흘러 많은 기억이 희미해졌겠지만, 작은 단서 하나가 그녀에게는 가족의 온기를 되찾아줄 유일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60년 전 진해의 가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의 기적 같은 만남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