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3일,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국감)에 출석하면서 삼권분립의 원칙과 민주적 견제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순간이 연출되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오전 10시 10분께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곧바로 재판의 독립을 이유로 증언대에 서기 어렵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수장으로서 선택한 정면 돌파였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대법원장으로서 국감의 시작과 종료 시에 인사 말씀과 마무리 말씀을 했던 종전의 관례에 따른 것"임을 명확히 하며,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위축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발언은 법관이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결과에 이를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인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법부의 확고한 원칙론을 대변했습니다.
실제로 조 대법원장은 이번 국감 증인 출석 요구가 "현재 계속 중인 재판에 대한 합의 과정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8조(계속 중인 재판 관여 금지)와 헌법 103조(사법권 독립), 법원조직법 65조(합의 비공개)의 규정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법률적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삼권분립 체제를 가진 법치국가에서는 재판사항에 대해 법관을 감사나 청문의 대상으로 삼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국회의 자제를 관례와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 후 종전의 관례대로 법사위원장의 양해를 구해 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국정감사는 예상 밖의 상황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이 조 대법원장에게 증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면서, 대법원장은 관례대로 이석하지 못하고 국감장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의 신분을 참고인이라고 규정하며, 국감장에서 의원 질의를 듣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는 대법원장이 기관 증인으로서 인사말 후 퇴장하는 오랜 관행을 사실상 무시하고, 직접적인 국회 통제 아래에 두려는 강력한 시도로 해석됩니다. 이석 없이 진행된 국감은 사법부 수장이 정치적 공방의 한복판에 노출되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이석이 불발된 상황에서도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는 "대법원은 국감에 앞서 미리 서면 질의 등에 충실히 답변드렸다"며, "부족한 부분은 법원행정처장이 답변하거나 국감 종료 시 국감 과정에서 지적된 사항을 종합해 마무리 말씀으로 충분히 답변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재판 관련 질의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최대한 피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이로써 법원행정처장이 기관 증인으로서 답변하는 기존의 역할 분담을 유지하려는 사법부의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과 사법부를 향한 의혹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도 밝혔습니다. 그는 "저는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 왔으며 정의와 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최근의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한 정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법부를 둘러싼 작금의 여러 상황에 대해선 깊은 책임감과 함께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고민과 책임감을 드러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앞으로 "국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며 국민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더욱 충실히 다해나가겠다"고 약속하며,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임을 피력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은 사법부의 독립과 입법부의 견제 권한이 정치적 현안을 매개로 가장 날카롭게 충돌하는 헌정사의 중요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관례를 깨고 이석 없이 국감장에 남아 여야의 공방을 직접 지켜본 대법원장의 모습은, 사법부 독립 수호라는 무거운 과제가 정치적 격랑 속에서 시험받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대법원장이 재판 위축을 우려하며 증언 거부의 원칙을 고수한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나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 사법부 수장이 국회에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 역시 정당한 민주적 절차입니다. 향후 법원행정처장의 답변과 국감 종료 시 조 대법원장의 마무리 말씀에서 이 충돌 지점에 대한 어떠한 균형점이 제시될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